글을 읽다 보면 이민 오시는 분들의 정석처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이 결정 된다는 말,
말 하면 미국 이민 올 때 아무 생각 없이 뭔가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온다는 말로 직역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 하고 조사하고 내가 미국 가서 무엇을 해야 되겠다 마음에 결심을 하고 오는 사람은 굳이 마중 나온 사람의 길을 따라 갈 필요는 없다고 전 생각을합니다
제 예를 들자면 전 공항에 여동생이 나왔습니다.
동생이 저를 초청 했구요.
동생은 그로서리를 크게 하고 있고 베스트 라빈스를 두 군데서 하고 있습니다.
저도 생각 없이 왔다면 동생 따라 크로서리를 했든가 아님 동생이 운영하는 베스킨 라빈스을 한 군데 인수해서 했든지 했겠지요.
한국에서 미국행을 결심 했을 때 많은 싸이트을 오고가며 미국의 직업을 파악하기 시작 했습니다.
일단 영어가 부족하니 사무직 제외
두 번째 내가 가져 갈 수 있는 돈의 한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어림잡아 파악 해 봤습니다.
식당 ,그로서리, 음반가게 ,베스킨라빈스, 스모크 샵, 세탁소 등등.....
세 번째는 내가 가는 시애틀의 특성과 날씨 환경 어떤 기업이 있나를 파악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갈 아이가 있으니 집값이나 아파트 가격이 싸면서 학군이 괜찮은 곳이 어디인가 동생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애틀엔 항구가 있고 세계적 기업이 몇 개나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물량이 많을 것이다 생각을 하고 트럭을 생각 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업무를 볼 때 그 당시 명태 하신 분들이나 사업에 망한 사람들이 생활 유지를 위하여 택시업계로 많이 나섰고 큰 돈을 주고 개인택시를사시는 분들이많았습니다.
또한 개인 용달을 사서 하시는 분들도 많이 파악이 되었구요.
그래서 전 난 생소한 곳에 짧은 영어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트럭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왔지만 계획과 현실은 완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트럭에 올인 해야 겠다는 생각과 트럭만 생각하자 하는 결심은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착오와 수정을 거듭하면서 트럭일을 내 일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이 싸이트에서나 다른 싸이트에서 트럭일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트럭일을 비하하는 사람과 다투기도 해 가면서 전 트럭일의 찬양론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9년만에 딸 셋 시집 보내고 내 집 사고 지금은 안정 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트럭만이 최고다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혼자서 버는 수입이 다른 직업에 비해 벌이가 괜찮다는 것 이지요.
물론 위험도 따르고 초기엔 경력을 쌓기 위해 고생도 감수 해야 하고 내 트럭을 사기위해 근 오천만원에서 일억의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일을하느냐에 따라 가족과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고 트럭에서 먹고 자고 하는 떠돌이 생활도 해야하는 어려움을 감수 해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지금의 저처럼 집에서 출퇴근하고 휴일엔 쉴 수 있는 직업으로 전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어디에 정착을 하느냐가 중요 하겠지요.
항구가 없는 내륙이나 큰 물류가 없는 지역에 정착을 한다면 저처럼 일 하기가 힘들겠지요.
이민을 오실 때 미국 지도를 펼쳐 보시고 미국 도시를 파악 하세요.
물론 닭 공장이나 특수한 스펀으로 들어오시면 영주권을 받을 때 까진 지역이 제한 되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어디에 정착 할 것인가 계획을 세우세요
자녀가 있어 학군을 따지거나 건강 때문에 날씨와 지역을 따진다면 직업 선택에 제한이 되겠지요.
아님 이 모든 것을 충족 할 수 있는 지역을 찾든가 하든지 해야겠지요
그럴려면 미국을 공부 하셔야 합니다.
위 주소는 시애틀에 중고 물품이나 직업 구인 구직란이 실려 있는 싸이트 입니다.
이 싸이트는 시애틀 뿐 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있습니다.
이건 시카코의 한인 뉴스 및 안내 싸이트입니다.
이건 시애틀 뉴스와 구인구직 중고품 판매등 커뮤니티 싸이트입니다.
이렇게 미국 큰 도시에는 그 지역 한국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싸이트가 있습니다.
교차로 뉴욕 교차로 조지아 등등 찾아 보세요.
그럼 많은 정보와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크레이그리스트를 보고 집사람도 공항에 들어가게 되었고 딸 아이들도 그 사이트를 통해서 직장을 잡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가면 트럭 잡도 매우 많습니다.
영어만 조금 할 수 있으면 미국에서 2년 정도 경력만 쌓이면 미국에 좋은 회사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얼마 전 저의 동네에 만두집이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인데 한국의 안흥진빵을 조금 베겼다 할까요
만두국은 뭔가 2% 부족한 것 같지만 장사진을 칩니다.
모처럼 특색 있는 음식이 출현 한 거지요.
늘 식당이 생기면 늘 똑같은 고기집 찌개집 맛도 그 맛이 그 맛인 식당만 생기다 오랜만에 큰 만두에 한국 이름 난 만두집에가면커다란 만두 뛰워주고 푸짐한 느낌이 드는 만두국이 나오듯 지금 그 만두집이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와 특색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제가 주장하는 특색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
그냥 남들이 하는 그로서리 스모크 샵 식당이 아니라 작은 변화를 안고 오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 많이 가지고 와 대학교 앞이나 보잉 마이크로 소프트 가 존재하고 있는 몫 좋은 곳에 큰 돈을 투자하시든가요
큰딸 아이 사는 곳 근처에 파머스 햄버거 집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햄버거 하면 맥도널드나 버거킹을 꼽지요.
그 대기업 홍수속에 파머스 햄버거 집은 엄청 손님이 들끓습니다.
직접 조리하는 고기와 햄버거 크기... 특색을 살려 시장을 파고 든 거지요.
바로 그런 특색을 갖고 오시면 성공 합니다.
한국식당가면 요샌 외국 사람들도 많이 옵니다.
한국 음식 문화가 조금씩 세계화가 되어 간다는 거지요.
월남 국수가 미국에 자리 잡고 스시집이 미국서 탄탄한 시장을 점령하듯 여러분도 특색있는 음식을 배워 오시면 한국촌에서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이 커집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얼마 전 조지아 닭 공장으로 오신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헌데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중고차 사는데 데려가 영어가 부족한 그 사람을 대신해 영어 대신 해 주었다고 500불을 요구해 그 돈을 주었다 합니다.
헌데 그 차가 밋션이 안 좋아 수리비가 2000불 정도 나왔다 합니다.
그런데 그 소개 시켜 준 사람은 나 몰라라 하고...
처음 운전 면허 없으니 시장 보러 가는데 먼저 온 닭공장 선배가 라이드 해 줬다고 한 번 나갈 때 마다 100불 요구하고...
미국이 이런 나라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믿을 수 없고 형제라고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전에 제가 글 올린 것 중에 텍사스 친구가 켄사스에서 경찰에게 잡혀 오고가지 못 할 때 그 친구 트럭을 몰고 올려고 덴버까지비행기를타고 가 덴버에서 한인이 운전하는 개인택시를 타고 켄사스 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헌데 그 분은 바로 자기 형 한테 사기 당해 신분 해결 못 하고 불체라로 남아 힘들게 택시하고 있다고 3시간 가량 가는 동안 내내 하소연을 제게 털어 놓았습니다.
이번에 시애틀에서 면허 갱신하고 가시면서도 힘든 미국 생활 하소연 하시더군요.
이런 아픔 안 당할려면 준비 철저히 하시고 공부 많이 하고 오세요.
미국 오시면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 믿을 수 없어 가까이 하기에 마음이 추춤해 지지만 결국은 한국사람 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한국 사람만이 당신을세세하게도와 줍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길이면 부딪쳐야 하고 부딪쳐 내가 우위에 있을 려면 내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뻔한 겁니다.
내 집이 불에 타 손해를 봤을지라도 불을 영원히 멀리 할 수 없고 큰 홍수로 내 재산이 휩쑬려 갔어도 물을 결코 멀리 할 수없습니다.
다만 가까이 하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그걸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겁니다.
미국에 와 면허취득을 위해 이 빨간 폰티악을 타고 엘에이로 향 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곳에 도착하여 아 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그때 미국은 강도가많다고 하여 차 안에서 자면서 실내등도 못 키고 움추려 잤던 생각이납니다. 지금은 18만 마일이 넘어 낡았지만 아직도 생생한 차 입니다. 처음 구입한 중고차 이지만 첫정이라 그런지 지금도 애지중지 하는 차 입니다.
시애틀에 정착하여 처음 나들이 간 곳이 여기 입니다.
둘째 대학 다녀야 하니 5년 할부로 둘째에게 사준 차 입니다. 이 차도 지금 16만 나일 탔는데 아직도 사위가 잘 끌고 다닙니다.
제가 첫 동행했던 트럭 입니다. 한 달간 일하고 왔는데 다른데서 안 써 주는 거 머리 올려 줬더니 돈 달라고 한다고 어이없는 논리에로임금을 안 줘 싸우고 싸워 500불 받았지만 제가 처음으로 미국 대륙을 횡단했던트럭 입니다. 비록 할 번 한달 간 운행으로 그만 두었지만 말 그대로 저 머리 올려 준 트럭 입니다. ㅎㅎ
제가 미국 와 트럭자문을 구했던 친구 입니다. 지금도 자주 만나고 술 한잔씩 하는 동갑친구 입니다,트럭일은 이 친구가 앞섰지만 오너 오퍼레이드는제가 선배 지요. 지금은 같이 항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시애틀에살구요.
동생 그로서리 입니다. 처음엔 동생이 그로서리를 권하기도 했지만 한국서 식당을 하고 온 집사람 경험을 살려 식당을 하라고 ...결국은 식당에 취업을하여 이민 첫 직업을 택했지만요.
이리저리 치이다 홧김에 내 차 사 처음 운행한 날 입니다. 하필이면 겨울에 내 차를 사서 미국을 몰라 힘든 80번 도로를 택해 눈길에 고생은 했지만 버는게 다 내 돈이다 생각하니 그저 입가에 미소만이...생각해 보세요. 엘에이에서버어지니아까지 4000불에 버어지니아에서 덴버까지 3500불. 미소가 절로나오지요. 철없던 트럭커의 첫 운행입니다. 그 놈의 돈돈돈!!!!